선택된 그녀 The Chosen One

.<선택된 그녀>는 표현주의적 스타일을 연상시키며, 이를 차용하는데 머물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여 표현주의의 심층을 탐구한다. 이는 미쟝센과 인물의 성격화에서도 나타나지만,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는 방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하녀 앨리는 숲을 가로질러가고 그녀를 기다리는 영주 네프림은 그녀와 교차되어 나타난다. 네프림은 후계자를 낳을 처녀를 찾아내는 방법을 마녀에게 알아내라고 앨리에게 명령하며 이때 그들의 공간은 마녀의 공간과 교차된다. 마녀는 앨리에게 ‘선택의 책’이 지시해주는 대로 다른 세계로 가면 ‘선택받은 소녀’를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선택의 책’을 받은 소녀가 책을 펼치는 순간, 네프림의 공간이 교차된다. 이러한 공간의 교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다음 순간에 알 수 있다.
소녀에 대한 원형 트랙킹, 소녀와 네프림의 이중인화가 이어지고 마침내 소녀는 네프림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이동은 실제가 아닌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소녀가 도착한 곳은 ‘죽은 영혼의 전당’이며 그곳은 광인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존재는 실제인지 환상인지조차 모호하다. 그리고 네프림이 소녀를 ‘죽은 영혼의 전당’으로 초대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그 곳은 의식의 영역이면서도 억압된 비이성의 영역이며 광기의 전당이다. 따라서 소녀와 네프림의 교차편집은 소녀의 의식이 네프림의 지배 하에 놓일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앞 부분에서 앨리와 네프림, 마녀의 공간 교차 또한 그들의 의식이 서로를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한 색채의 현대적인 영화들이 범람하는 속에서 흑백의 표현주의 영화는 단연 돋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희소가치 때문에 빛나는 것은 아니며 과거의 전통에 경배를 보내고 나아가 과거를 완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공간의 교차를 통해 의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가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