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블루 Venus Blue

.신화 속의 여신이 현대에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제목이 이미 지시하고 있듯 <비너스 블루>는 이러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다. 현대 도시에서 녹색의 자연은 점점 사라지고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의 푸른 꽃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세기 말에 환생한 비너스는 TV 화면과 함께 숨쉬고 도시의 차가움을 드러내는 파란 옷을 입고 도시 공간에 들어선다. 그녀를 만난 이들은 행복인지 불행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묘한 환각 상태에 빠진다. 마치 바이러스가 전염되기라도 하듯 말이다. 청년들은 춤추고 중년의 남자는 환상을 경험한다. 그녀가 찾아 들어간 슈퍼마켓에서는 모든 것이 터지고 흩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자본주의 도시의 질서화된 일상에서 그녀의 출현은 질서를 파괴하는 계기이다. 설사 비너스의 바이러스가 독약이라 해도 아마 도시인들은 일탈의 달콤함을 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선명한 색채와 사운드, 힘있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이다. 도로 위에서 비너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여주는 점프 컷은 여신으로서 그녀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또 주유소의 롱테이크는 그녀의 움직임과 동반되어 비너스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를 보여주는 듯 하다. 시각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파란 색과 그녀의 몸이다. 파란 색이 비너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파란 알약과도 같다면 그녀의 몸은 사람들이 파란 알약을 먹도록 자극하는 수단이다. 자극은 관음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그로 인해 도시가 혼란에 빠진다면 비너스의 몸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녀의 몸이 어떤 의미로 표현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세 번째 재미가 될 수 있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