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 이제 벌레들의 시간이 도래했다. 한 무리의 바퀴벌레들이 황폐한 집에 몰려든다. 얼핏 보기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같다. 집안에서 한 마술사가 마지막 쇼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폭풍이 몰려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실내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는데 누군지는 통 분명치 않다. 사람인지, 유령인지도 분간하기 어렵다. 벌레들은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말썽을 피우고 난장판을 벌인다. 그리고 마술사는 최후의 마법을 시작하려고 한다. 대체, 이 집엔 어떤 미스테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바퀴벌레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다보면,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단편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순간적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별을 굳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장편보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이 단편은 얼핏 <죠의 아파트> 같은 코미디물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혀 거리가 멀다. 벌레들이 몰려들어 비좁은 실내를 휘젓고 다니는 양태는 유사하지만 훨씬 몽환적이다. 유려한 이미지들에 주목할 만하고, 좁은 실내를 누비고 다니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인상적이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사물에도 실은, 복잡한 우주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김의찬)
바퀴벌레의 밤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