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Ruben

.누구나 청소년기에는 한번쯤 자살을 생각한다. 그것은 철부지 어린애가 삶의 고단함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성장을 위한 통과제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계속되는 죽음에의 욕망은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도피의 욕망이며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살인 충동에 대한 자기투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 원칙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한다. 그런데 ‘어른’이 된지 한참 후에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루벤>은 이유가 어찌되었건 죽음을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살을 위해 의자를 준비하고 천정에 끈을 묶는다. 이제 그는 끈으로 자신의 목을 조이고 의자에서 발을 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신성한 죽음의 의식에 무언가가 자꾸 초를 친다. 판은 튀어대고 바퀴벌레가 유유히 그를 지나쳐가며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그의 신성한 죽음의 의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라본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게 ‘왜 죽으려 했는가’라는 현실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죽음에의 욕망은 점차 두려움으로 바뀌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그에게는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굉음이 울림고 그가 소리를 지른 뒤 무지화면에서 성냥불 붙이는 소리가 난다. 화면이 밝아지면...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박지연)